원술

원술은 남자가 뱉어내는 기이한 낱말들을 입속으로 굴려보았다. 전주 이씨라는 기이한 가문 이름이나 펀드매니저라는 해괴한 직함 따위는 그녀의 두뇌로도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이민족의 주술 같았다. 허둥대며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자신을 변호하는 그 멍청하고도 필사적인 꼴은 무척이나 우스꽝스러웠다. 사세삼공의 고귀한 핏줄을 이어받은 그녀조차 체통을 잊고 어깨를 들썩일 정도였다. 붉은 입술 사이로 작고 고운 웃음소리가 주체하지 못하고 새어 나왔다. 놀랍게도 그것은 꽤나 가볍고 통통 튀는, 그 나이대 소녀다운 소리였다. "공녀님. 명하신 탕약을 대령했습니다." 묵직하고도 건조한 음성이 상황을 차갑게 식혔다.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기령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도자기 그릇을 조심스럽게 받쳐 들고 다가온 참이었다. 순식간에 원술의 척추가 뻣뻣하게 굳었다. 그녀 특유의 콧대 높은 오만함이 마치 가면을 뒤집어쓰듯 얼굴 위로 번쩍이며 자리 잡았다. 그녀는 언제 웃었냐는 듯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기령이 바친 꿀물을 내려다보았다. 황금빛 눈매가 날카롭게 호선을 그렸다. 그녀는 완벽한 노상의 가뭄 귀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챗붕은 그 극단적인 태도 변화를 보며 헛바람을 들이켰다. 방금 전까지 눈가에 눈물까지 맺혀가며 쿡쿡거리던 여자가 갑자기 천하를 호령하는 폭군 행세를 하고 있지 않은가. 저 노골적이고도 필사적인 표정 관리는 남자의 눈에 너무나도 투명하게 읽혔다. 속은 그저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쉽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녀일 뿐인데, 억지로 가문의 무게를 짊어지고 센 척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자조적인 헛웃음이 챗붕의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여의도에서 수십억 펀드를 굴리던 그는 이제 길바닥에서 츤데레 흉내를 내는 이천 년 전 금발 미소녀의 비위를 맞추게 생긴 셈이다. 참으로 눈물겨운 출세가 아닐 수 없었다. "네놈의 그 천박한 변명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군." 원술은 기령이 건넨 그릇을 우아하게 받아 들며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달콤한 향기가 그녀의 코끝을 간질이자 미간의 주름이 약간이나마 느슨해졌다. "뭐, 좋습니다. 어차피 저도 제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니까요." 챗붕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그보다, 방금 엄청 재밌게 웃으시지 않았습니까? 갑자기 그렇게 정색하시니까 제가 다 뻘쭘하네요." 기령의 투박한 손이 반사적으로 허리춤의 검병으로 향했다. 감히 주군을 향해 실언을 내뱉은 불경한 자의 목을 칠 기세였다. 다행히 원술이 부채를 가볍게 들어 올려 기령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녀의 하얀 뺨이 순식간에 홍옥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길바닥의 버러지가 자신의 조잡한 내면을 꿰뚫어 보았다는 사실은 그녀의 오만함에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내가, 내가 언제 웃었다고 그러느냐!" 원술이 언성을 높이며 꿀물 그릇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극도로 과장된 부정이 오히려 그녀가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방금 숨넘어갈 듯이 웃으셨잖아요. 눈가도 아직 촉촉하신데." 챗붕은 굳이 그 사실을 짚고 넘어가는 만용을 부렸다. 그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살벌한 기운보다 눈앞에서 허둥대는 여자의 반응이 훨씬 더 흥미로웠다. 다들 무서워 벌벌 기는 가문의 이름표 뒤편에 숨은, 인정받고 싶어 안달 난 한 명의 외로운 인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이 불경한 자식! 기령, 당장 저놈의 주둥이를 찢어버리... 아니, 멈춰라! 아직 내 말이 끝나지 않았다!" 원술은 횡설수설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도망치듯 그릇째로 꿀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너무 급하게 마신 탓에 사레가 들려 기침을 컥컥 토해내고 말았다. 우아함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참담한 모습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노상의 가뭄 귀신에게 오늘은 퍽 고단한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공개 마지막 업데이트: 2026-05-05 01:17:23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