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보란 해전
알보란의 파국
1771년 3월 10일–12일
후세의 역사가들이 1771년의 영서전쟁에서 하나의 날을 골라 그 전쟁의 성격이 바뀐 때를 묻는다면, 대개 산타 루시아의 밤을 꼽는다. 그 밤, 카디스에 갇혀 있다고 믿어졌던 스페인의 열아홉 전열함이 영국의 봉쇄망을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타 루시아가 영국 해군에게 수치였다면, 알보란은 재난이었다.
전자는 함대를 놓친 사건이었으나, 후자는 그 함대를 붙잡기 위해 동원된 왕립해군의 힘 자체가 적의 책략에 의해 세 조각으로 나뉘고, 그 조각들이 차례로 얻어맞은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유럽의 해군가들은 젊은 알카사르 공작 돈 가브리엘을 단순히 행운이 좋은 귀족 장교라 부르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가 행운의 총아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인정해야 한다.
다만 알보란에서 운명은 그에게 승리를 주지 않았다.
운명은 몇 차례 문을 열었을 뿐이며, 그 문으로 함대 전체를 밀어 넣은 것은 그 자신이었다.
I. 산타 루시아 다음 날
카디스에서 스페인 함대가 사라졌다는 보고가 지브롤터에 도착했을 때 영국 해군이 받은 충격을 오늘날의 독자가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돈 가브리엘이 이끌고 나온 것은 몇 척의 순항함이 아니었다. 새로 건조된 거대한 Santísima Trinidad를 정점으로 한 전열함 열아홉 척이었다.
스페인 함대의 중앙에는 가브리엘의 기함 Santísima Trinidad와 Fénix, San Fernando, San Juan Nepomuceno, San Francisco de Asís, Guerrero, San Julián이 있었다.
선두전대는 노련한 루이스 데 코르도바가 맡았다. 그의 지휘 아래 Rayo, San Vicente, San Agustín, San Lorenzo, San Pascual, Princesa가 섰다.
후위에는 San Nicolás, Santo Domingo, San Francisco de Paula, San Rafael, Galicia, Oriente가 따랐다.
이것은 질적으로도 결코 경시할 함대가 아니었다. 특히 1760년대 후반에 완성된 스페인 신형함들은 옛날의 둔중한 에스파냐 함대라는 영국인의 편견으로 평가할 물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함대의 심장은 역시 Santísima Trinidad였다.
아바나에서 태어난 이 거선은 아직 새 배였다. 그 포수에 대해서는 당대 기록에도 차이가 있으나, 어떤 계산을 따르더라도 유럽 최대급 전열함 가운데 하나였음은 의심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배의 실제 함장은 페드로 곤살레스 데 카스테혼이었다.
젊은 제독과 노련한 함장이라는 조합은 이후 유명해졌다.
알카사르가 전쟁을 생각했다면 카스테혼은 배를 생각했다.
제독이 “저곳으로 간다”고 말하면 카스테혼은 “어떤 돛을 몇 장 펼쳐서 갈 것인가”를 물었다.
그들 아래에는 아직 대령도 제독도 아니었던 젊은 호세 데 마사레도가 함대참모로 있었다. 후세가 그를 위대한 항해가와 조직가로 기억하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알보란의 복잡한 야간항해에서 그의 존재는 작지만 흥미로운 역사적 우연이었다.
스페인의 문제는 목적지였다.
카르타헤나였다.
그곳까지 가면 가브리엘은 현지의 전력, 군수창고, 조선시설을 얻는다. 손상을 수리하고 새로운 승조원을 보충하며, 필요하다면 발레아레스 제도나 지브롤터를 향해 다시 출동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영국인의 문제 역시 명료했다.
열아홉 척을 카르타헤나에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
II. 하우의 그물
리처드 하우 소장은 패배한 사람이 아니었다.
산타 루시아에서 그의 전열함은 한 척도 격침되지 않았으며, 그의 함대는 싸움에서 패하지도 않았다.
그보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났다.
그는 적을 보지 못했다.
90문함 Barfleur에 장성기를 올린 하우는 카디스에서 즉각 추격을 시작했다. 그의 직접 지휘 아래 전열함 열네 척이 남동쪽으로 달렸다.
Barfleur, Ajax, Albion, Defence, Egmont, Prince of Wales, Ramillies, Resolution, Marlborough, Boyne, Ardent, Raisonnable, Trident, Intrepid였다.
이 가운데 Ajax에는 실제로 당시 그 배를 지휘하던 존 카터 앨런이 있었고, Marlborough에는 리처드 비커턴이 있었다. 64문함 Raisonnable의 함장은 모리스 서클링이었다.
영국 함대는 스페인보다 숫자는 적었으나 결코 약한 세력이 아니었다. 74문함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 승조원과 함장들은 왕립해군이 지난 전쟁에서 길러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하우 혼자 싸울 필요는 없었다.
지브롤터에는 전임 지중해 사령관 리처드 스프리 소장이 급히 다시 남하하여 여덟 척을 모았다.
Royal Oak, Bellona, Thunderer, Torbay, Prudent, St Albans, Worcester, Somerset.
그 가운데 Royal Oak의 함장은 몰리뉴 슐덤이었다. 아직 진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74문함으로, 스페인과의 전쟁 가능성 때문에 1770년 11월 취역시킨 배였다.
더 동쪽의 미노르카에서는 로버트 맨 소장이 일곱 척을 이끌고 서진했다.
Kent, Cornwall, Magnificent, Superb, Valiant, Dragon, Centaur.
이렇게 해서 영국은 서부 지중해에 전열함 스물아홉 척을 투입하였다.
프리깃, 슬루프, 커터를 합치면 움직이는 군함은 마흔 척을 넘었다.
수치만 본다면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바다는 수치를 세지 않는다.
그리고 1771년에는 스물아홉 척이 서로의 위치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하우와 스프리, 맨을 연결한 것은 무선전신이 아니라 프리깃이었다.
망원경이었다.
신호기였다.
때로는 포성이었다.
따라서 영국이 가진 것은 스물아홉 척짜리 함대 하나가 아니었다.
서쪽의 열네 척.
지브롤터의 여덟 척.
동쪽의 일곱 척.
세 함대였다.
가브리엘이 이것을 깨달은 순간 알보란 해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III.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3월 10일 오후, 스페인 정찰 프리깃들이 차례로 보고를 가져왔다.
하우가 뒤에 있었다.
스프리는 앞에 있었다.
맨이 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카르타헤나를 향해 계속 간다면, 가브리엘은 여덟 척을 돌파한 뒤 일곱 척을 만나야 했고, 그 동안 하우의 열네 척이 뒤를 물 것이다.
한 참모장교가 훗날 기록한 바에 따르면 이때 함대회의는 놀랍도록 조용했다.
마침내 누군가 말했다.
“카디스를 나온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브리엘은 그 말을 꾸짖지 않았다.
그는 해도만 보았다.
그리고 서쪽을 가리켰다.
모두가 하우가 오는 방향을 보았다.
제독은 말했다.
“저리로 간다.”
카스테혼이 물었다.
“하우에게로 말입니까?”
“그렇다.”
그 유명한 결정은 이토록 간단하게 내려졌다고 한다.
후대의 애국적 전기작가들은 여기에 훨씬 장대한 문장을 덧붙였다. 그러나 진실은 오히려 간결했을 것이다.
가브리엘에게 선택지는 셋이었다.
도망치다 포위될 것.
정면으로 스프리를 쳐서 길을 열 것.
혹은 포위망을 구성하는 한쪽 날개가 아직 자신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 그 날개를 먼저 칠 것.
그는 세 번째를 택했다.
IV. 유령함대
그날 해질 무렵 스페인 함대에서 세 척의 프리깃과 몇 척의 소형함이 떨어져 나갔다.
그 가운데는 후일의 제독 후안 데 랑가라가 지휘하는 프리깃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들에게는 징발 상선들이 딸렸다.
이 작은 선단에는 이상한 명령이 내려졌다.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항해할 것.
큰 선미등을 달 것.
정해진 시간에 신호포를 쏠 것.
때로는 두 개 이상의 등불을 수직으로 달아 멀리서 대형함의 등화처럼 보이게 할 것.
동쪽으로 갈 것.
즉 열아홉 전열함이 계속 카르타헤나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게 하라는 명령이었다.
밤의 바다에서 함대를 본다는 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영국의 프리깃 함장이 본 것은 선체 열아홉 개가 아니었다.
검은 수평선 위의 등불이었다.
멀리서 터지는 신호포였다.
바람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돛의 그림자였다.
그것들을 조합하여 그는 “함대”라는 결론을 내렸다.
스프리의 정찰함은 스페인군이 계속 동쪽으로 간다고 보고했다.
맨 역시 서진을 계속했다.
두 영국 전대는 훌륭하게 협공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협공하려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다.
진짜 스페인 함대는 어둠 속에서 북서쪽으로 변침했다.
선미등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함대 내 포신호는 금지되었다.
각 함은 앞선 함의 희미한 등불과 검은 돛을 놓치지 않으면서 밤새 항해했다.
여기에서 운명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달이 구름 뒤로 들어갔다.
마사레도가 계산할 수도, 알카사르가 명령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어둠을 이용해 열아홉 척을 잃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이끌고 간 것은 사람의 일이었다.
V. 첫 번째 칼끝
11일 새벽, 하우의 열네 척은 추격 때문에 긴 대열로 늘어져 있었다.
그것은 전투전열이 아니었다.
빠른 배가 앞에 있었고 느린 배가 뒤에 있었다.
대략 여섯 척이 선두에, 다섯 척이 중앙에, 세 척이 후미에 떨어졌다.
하우는 적이 자기 앞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뒤에서 나타난 돛대들은 처음에는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안개가 얇아졌다.
스페인 군함들이 나타났다.
한 척.
세 척.
일곱 척.
그리고 마침내 너무 많아 세기를 포기해야 할 만큼의 돛이 서쪽 하늘을 메웠다.
가브리엘은 열아홉 척 모두를 돌격시키지 않았다.
그는 선두의 빠른 여덟 척만 뽑았다.
코르도바에게는 본대와 하우 사이를 유지하도록 명했다.
목표는 적 후위 세 척이었다.
그 가운데 Raisonnable이 있었다.
64문의 이 배는 모리스 서클링이 지휘하고 있었으며, 불과 몇 달 전 스페인과의 전쟁을 예상하여 취역한 신형함이었다.
첫 포성이 울릴 때까지 영국 후위는 자신들이 스페인 함대의 일부 낙오함을 상대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페인 배들은 선체를 부수는 데 집착하지 않았다.
그들의 첫 사격은 높은 곳으로 향했다.
마스트.
야드.
삭구.
조타설비.
배를 가라앉힐 필요는 없었다.
멈추게 하면 되었다.
Raisonnable은 집중사격 속에서 앞마스트를 잃었다.
Trident의 삭구는 갈가리 찢겼다.
Ardent 역시 크게 손상되었다.
하우가 상황을 알아차리고 본대를 돌렸을 때, 가브리엘은 싸움을 계속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격중지를 명했다.
스페인의 보트들이 Raisonnable로 몰려들었다.
오랜 포격으로 죽이는 대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다음, 항복을 받아낸 것이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영국 국기가 내려갔다.
스페인 국기가 올라갔다.
왕립해군 전열함 한 척이 살아 있는 채로 적에게 넘어갔다.
가브리엘은 즉시 서쪽으로 달아났다.
하우는 그를 추격했다.
이것이 그날 하우가 내린 가장 논란 많은 결정이 된다.
그러나 그를 비난하기 전에 그의 처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는 이미 카디스에서 열아홉 척을 놓쳤다.
그런데 이제 그 적이 자기 눈앞에서 전열함 하나를 포획하여 끌고 가고 있었다.
그가 추격을 포기한다면 런던에서는 이를 신중함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었다.
겁이라 불렀을 것이다.
가브리엘은 바로 그 사실을 계산했다.
VI. 바람이 먼저 스페인에게 오다
정오가 지나면서 바람이 죽었다.
두 함대의 돛이 축 처졌다.
배들은 몇 시간 전까지의 맹렬한 추격이 거짓말처럼 바다 위에 느려졌다.
그때 스페인 함대가 조금 더 육지 쪽에 있었다.
그리고 연안의 가열된 공기와 바다가 만드는 약한 국지풍이 스페인 쪽에 먼저 닿았다.
처음에는 San Juan Nepomuceno의 깃발이 움직였다.
곧 Rayo의 돛이 부풀었다.
이어 다른 배들의 돛에도 바람이 찼다.
영국 함대에는 아직 바람이 없었다.
가브리엘에게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 있었다.
달아나는 것.
그는 그러지 않았다.
Santísima Trinidad의 신호줄을 따라 깃발이 올라갔다.
반전.
카스테혼이 신호를 다시 확인했다고 한다.
“전 함대입니까?”
“빠른 함만.”
이번에는 열두 척이었다.
그들은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영국 선두를 향해 되돌아갔다.
후일 알보란을 논한 영국 해군사가들이 가장 쓰라리게 적은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전체 숫자는 영국 29, 스페인 19였다.
그러나 이 순간 싸움은 29 대 19가 아니었다.
12 대 5였다.
가브리엘은 한 번도 영국의 숫자와 싸운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그 순간 자기 앞에 있는 숫자와 싸웠다.
VII. 다섯 척의 형벌
영국 선두의 다섯 척 가운데 Boyne과 Egmont가 있었다.
Boyne은 70문 정격의 중후한 배였다. 아래 갑판에 32파운드 장포를 싣고 있었으며, 1770년 포클랜드 위기 때문에 조기 취역한 함이었다.
Egmont는 더 위험했다.
74문함.
왕립해군이 점점 표준으로 삼고 있던 유형이며, 화력·내항성·기동성의 균형이 뛰어난 본격적인 함대전 함정이었다.
이 다섯 척이 약한 배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한 배들이었기에 비극은 더 컸다.
그들에게 없었던 것은 바람이었다.
영국의 뒤쪽 함정들은 보트를 내려 닻줄처럼 밧줄을 걸고 전열함을 예인하려 했다.
수백 명의 수병이 노를 저었다.
하우는 신호기를 잇달아 올렸다.
전열을 유지하라.
선두를 지원하라.
돛을 최대한 펼쳐라.
하지만 신호는 바람을 만들지 못했다.
스페인 열두 척이 다섯 척을 에워싸지는 않았다. 그것은 혼란을 부를 수 있었다.
대신 차례로 지나가며 사격했다.
선두함이 영국함의 삭구를 때렸다.
뒤따르는 함이 포갑판을 쓸었다.
세 번째 함이 다시 마스트를 겨냥했다.
그리고 한 차례를 마치면 거리를 벌려 다음 함에게 자리를 주었다.
이는 고전적인 전열전과도, 무질서한 난전과도 달랐다.
국지적 우세를 만들어낸 뒤 그 우세를 반복적으로 통과시키는 싸움이었다.
두 시간 뒤 Boyne은 사실상 움직이지 못했다.
Egmont는 마스트와 조타설비가 치명적으로 손상되었다.
Marlborough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가브리엘은 침몰하는 적을 보고 싶은 욕심을 참았다.
Boyne과 Egmont의 국기가 내려가자 그는 다시 철수를 명했다.
바로 그때 하우 쪽에도 바람이 오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포획전열함은 이제 세 척이었다.
Raisonnable.
Boyne.
Egmont.
하우는 계속 추격했다.
VIII. 두 번째 그물
오후 늦게 스프리는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가 추격하던 “스페인 함대”는 프리깃과 상선에 지나지 않았다.
노련한 스프리는 즉시 변침했다.
여덟 전열함이 다시 서쪽으로 달렸다.
이때 가브리엘은 다시 포위되었다.
서쪽 또는 남서쪽에는 하우의 손상된 본대.
동쪽에는 스프리의 비교적 온전한 여덟 척.
가브리엘에게는 포획선 세 척이 딸려 있어 속도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 세 척이 그의 다음 무기가 되었다.
Raisonnable, Boyne, Egmont는 포획 직후였다.
스페인 포획조가 올라가 있었지만 외관은 여전히 영국 군함이었다.
가브리엘은 그들에게 영국기를 다시 올리게 했다.
이것만 보면 부정한 술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해전관습은 적기를 이용한 접근 자체를 반드시 금하지 않았다. 사격 전에 자기 국적을 밝히는 것이 명예와 적법성의 핵심이었다.
가브리엘은 그 선을 넘지 않았다.
세 포획함을 앞세웠다.
스페인 본대는 그 뒤를 넓게 따랐다.
해가 낮아졌다.
전날부터 이어진 포연과 지중해의 엷은 해무가 수평선을 흐렸다.
동쪽에서 돌아오던 스프리의 망원경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무엇이었겠는가?
영국 국기였다.
영국 전열함 세 척이었다.
그 뒤의 돛들이었다.
그가 하우의 함대 일부가 돌아오는 것으로 판단한 것은 어리석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운 판단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전투전열이 아니라 접근대형을 유지했다.
그 때문에 30분을 잃었다.
그리고 알보란에서 30분은 함대 하나의 운명이었다.
IX. 기가 바뀌다
거리는 줄어들었다.
가브리엘은 기다렸다.
너무 일찍 기를 바꾸면 스프리가 전열을 만들 것이다.
너무 늦으면 스페인 포획조가 영국 포화에 휩쓸린다.
마사레도가 거리를 불렀다.
카스테혼이 포갑판 준비완료를 보고했다.
마침내 Santísima Trinidad에서 신호기가 올라갔다.
세 영국기가 내려갔다.
그 자리에 스페인의 적황기가 올랐다.
동시에 Santísima Trinidad의 포문들이 열렸다.
뒤따르던 스페인 함선들도 일제히 기를 드러냈다.
영국 측 기록에서 이 순간은 거의 항상 같은 말로 묘사된다.
“갑자기.”
그러나 그것은 영국인에게만 갑작스러웠다.
가브리엘은 몇 시간 동안 바로 그 순간을 만들고 있었다.
스프리는 즉시 대응했다.
그는 도망가지 않았다.
Royal Oak와 Bellona를 중심으로 선두를 세우고 나머지 함들을 전열로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의 여덟 척은 접근과 전투가 동시에 시작된 탓에 간격이 일정하지 않았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함대를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코르도바의 전대가 영국 선두에 붙었다.
중앙의 중전열함들은 측면을 지나며 삭구와 포갑판을 두들겼다.
후위전대는 남서쪽으로 벌어져 지브롤터로 돌아가는 길을 위협했다.
스페인 프리깃들은 전열함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 중요한 일을 했다.
영국의 연락선을 쫓았다.
신호중계 위치를 흐트러뜨렸다.
소형함을 몰아냈다.
그리고 하우와 스프리 사이에서 정보를 옮기려는 배들을 붙잡아 두었다.
알보란의 승리는 포의 승리였지만, 그보다 먼저 연락의 승리였다.
X. Royal Oak
Royal Oak은 쉽게 항복할 배가 아니었다.
몰리뉴 슐덤은 7년전쟁을 겪은 노련한 장교였고, 그의 배는 영국 해군이 자랑할 만한 74문함이었다.
그는 두 차례 스페인 함선의 전방을 가르며 빠져나가려고 했다.
첫 시도에서는 San Vicente가 길을 막았다.
두 번째에는 Rayo가 측면을 때렸다.
Royal Oak은 계속 싸웠다.
그러나 앞마스트가 무너지고 조타가 불안정해지면서 결국 대열에서 떨어졌다.
가브리엘은 이 배에 세 척을 붙였다.
그것은 공정한 결투가 아니었다.
전쟁은 결투가 아니다.
해질 무렵 Royal Oak의 사격속도가 느려졌다.
마지막으로 후미의 포 몇 문이 불을 뿜은 뒤 영국 국기가 내려왔다.
하루 사이 네 번째 전열함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Royal Oak이었다는 사실은 훗날 런던의 굴욕을 몇 배로 키웠다.
XI. 밤과 화공선
해가 완전히 떨어졌을 무렵 하우의 잔여함들이 서쪽에서 접근했다.
이제 처음으로 영국군은 숫자를 합칠 기회를 얻었다.
가브리엘도 이를 알았다.
그가 낮 동안 해오던 전투를 밤에도 계속했다면, 그동안 얻은 모든 것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결전을 중지했다.
대신 화공선을 내보냈다.
목적은 배를 태우는 것이 아니었다.
불붙은 선박이 다가오자 영국 함장들은 선택해야 했다.
전열을 유지하며 충돌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방향을 틀어 피할 것인가.
정박 중인 함은 닻줄을 끊었다.
항해 중인 함은 급히 키를 돌렸다.
서로 가까워졌다.
신호기가 보이지 않았다.
포연과 불빛이 밤을 덮었다.
그 틈으로 스페인의 보트와 프리깃이 들어갔다.
그들은 멀쩡한 74문함에 승선하려는 광기를 보이지 않았다.
손상된 함.
낙오한 함.
포획선을 탈환하려는 보트.
예인줄.
이것들을 노렸다.
그리고 이 야간혼전에서 Trident에 불이 붙었다.
처음에는 삭구였다.
불은 갑판 구조물로 번졌다.
진화조가 달려들었으나 이미 낮의 전투에서 승조원은 지쳐 있었다.
불꽃이 탄약이 있는 아래쪽으로 퍼진다는 소문이 돌자 혼란이 생겼다.
밤중, 알보란 바다를 밝힐 만큼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64문함 Trident가 사라졌다.
그 폭발은 전술적으로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전투의 마지막 포성이었다.
스프리와 하우는 더 이상 추격할 수 없었다.
St Albans와 Intrepid는 돛대와 삭구 손상이 너무 심하여 다른 함의 예인을 받아야 했다.
나머지 함들도 흩어져 있었다.
가브리엘은 그들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충분히 이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XII. 아침
3월 12일 아침, 동쪽으로 향하는 스페인 함대가 다시 모습을 갖추었다.
열아홉 척 가운데 침몰한 전열함은 하나도 없었다.
두 척은 상당한 손상을 입었고 다섯 척은 경미하거나 중간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모두 항해할 수 있었다.
그 뒤에는 네 척의 영국 전열함이 따라왔다.
Raisonnable, 64문.
Boyne, 70문.
Egmont, 74문.
Royal Oak, 74문.
그 배들의 영국기는 내려져 있었다.
스페인의 색이 바람에 펄럭였다.
뒤쪽 수평선에서는 영국군이 손상함을 모으고 있었다.
Trident는 이미 바다 밑에 있었다.
St Albans와 Intrepid는 예인을 받아 지브롤터로 돌아갔다.
양측의 손실은 후대 자료마다 다르다. 가장 신뢰받는 스페인 해군성 집계는 스페인군 약 150명 전사, 400명 안팎 부상으로 기록한다. 영국군은 전사·부상자가 그보다 훨씬 많았으며, 네 나포함에서만 거의 2천 명에 가까운 장병이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함선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영국은 가브리엘의 열아홉 척을 막기 위해 스물아홉 척을 움직였다.
그 결과 다섯 척의 전열함을 영구히 잃었다.
네 척은 적에게 넘어갔고 한 척은 폭발했다.
두 척은 상당 기간 전투불능이 되었다.
스페인은 전열함을 하나도 잃지 않았다.
XIII. 하루 늦게 온 일곱 척
그날 오후가 지나고 다음 날, 로버트 맨의 미노르카 전대가 전장 해역에 도착했다.
Kent, Cornwall, Magnificent, Superb, Valiant, Dragon, Centaur.
일곱 척 모두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이 하루 일찍 도착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스페인의 애국적 역사가들은 흔히 “그들까지 왔더라도 알카사르는 이겼을 것”이라 적었다.
그것은 역사라기보다 신앙이다.
가브리엘 자신이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물여섯 살이나 서른 살의 영웅을 후세는 무적으로 만들기 좋아하지만, 바다에서는 일곱 척의 74문함을 가볍게 여기는 제독이 오래 살지 못한다.
알보란에서 가브리엘이 승리한 것은 영국의 스물아홉 척보다 강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끝까지 스물아홉 척과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이겼다.
첫 교전은 여덟 대 세 척이었다.
두 번째는 열두 대 다섯 척이었다.
세 번째는 준비된 스페인 함대와 아직 전열을 만들지 못한 스프리의 여덟 척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맨의 일곱 척은 아예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것이 알보란의 본질이다.
공개 마지막 업데이트: 2026-09-17 02:08:08 PM